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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조각들] 타블로 단편 소설집 - 안단테

*타블로 소설집 [당신의 조각들]에 속한 단편 의 개인적 해석/리뷰 포스트입니다. 전체적 내용과 스포일러를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피아노의 검은 껍질 위에서 작은 날개를 퍼덕이던 새. 아버지의 안단테에 맞추어 걷는 법을 배웠다." 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관점에서 쓰여진 이야기다. 우아한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며 환호받던 음악가 아버지는, 아들 조나단에게 난생처음 위대함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병으로 무대에서 연주를 중단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그 뒤로 '명예의 전당'에는 빛이 들어오는 일이 좀체 없었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아버지의 피아노 소리를 잊지 못하는 아들의 관찰 일기로만 보일 수 있지만, 저자가 관통하고 싶었던 주제는 부모님의 ..

독후 활동 2020.10.15

후회하지 않는 법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후회하지 않는 법을 알았다. 그 시절 좋아하던 사람이 가볍게 뱉은 말 덕분이다: "후회는 안 해, 그때의 내겐 그게 맞았던 거니까." 내 불필요한 상상력을 덜어준 이 사고는, 이때부터 나와 하나 되어 내 모든 결정의 토대가 되었다. 이 말이 왜 상상력과 관련이 있냐고 묻는다면, 후회는 상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긴 밤을 지새우게 만드는 생각들의 뿌리는 바로 '만약에'. 우리는 1.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그리고 2. 좋아 보였던 선택지를 이미 놓쳤을 때, 두 경우에 '만약에'를 떠올리곤 한다. 단어 하나가 가진 파급력은 예측을 불허한다. '만약에'로부터 갈라진 수많은 평행 세계들은, 한 번 생성되면 뇌리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

생각의 조각들 2020.09.24

코로나 블루에서 벗어나기:: 혼돈 안의 질서를 마주하라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바이러스의 발생과 진행은 언젠가 모두에게 동일한 '역사의 한 사건'으로 불리게 되겠지만 이 격변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인류는 현 상황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지명하기 어렵다. 개개인의 나이, 직업, 재정 상태에 따라 조각난 일상의 크기는 티끌과 태산의 차이가 나고, 가지지 못한 자들 속으로 침투한 '코로나 블루'는 마지막 남은 조각까지 부스러기로 만들어 버리는 파괴력을 내뿜는다. 잠깐, 남아있던 것마저 내 손으로 부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그렇다. '코로나 19'가 아닌 '코로나 블루'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만, 사실 세상은 우리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져다주는 매개체가 아니다. 그저 존재하고 변화할 뿐이다. 그리..

독후 활동 2020.09.19

인스타그램/소셜 미디어(SNS)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

며칠 전 시간수집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었다. 블로그는 작성하고 퇴고하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야만 만족스러운 글을 발행할 수 있지만 인스타그램은 단발성 생각들을 그때그때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번뜩였다가 휘발되는 자잘한 영감들은 나중으로 미룰수록 디테일과 열정이 사그라든다. 내 곁을 맴돌 때 보란 듯이 낚아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새 계정을 만들자마자 나를 관통한 사고는 '인스타그램이 인류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었다. 반박을 받기 전에 전제를 깔자면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창작자로서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소셜 미디어의 향후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지난 몇 년간 샘솟듯 탄생한 이 기술은, 물리적으로 모으기 불가능한 가지각색의 관중을 무한히 집합시키고, 시간과 경험을 들여..

생각의 조각들 2020.09.16

[MBTI 성격 유형] INFJ/인프제의 장단점 + 사족

올해 상반기에는 MBTI 열풍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언급이 잦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미 까마득한 과거에 MBTI 과몰입 단계를 거쳤던 나는 이 성격 유형 테스트가 겨우 지금에야 공공의 놀이로 진화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확실히 MBTI는 많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특성을 지녔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인터넷 심리 테스트의 정확한 결과에 열광한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때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한때 주목받았던 혈액형별 성격은 MBTI로 세대교체가 되었고,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을 정해진 유형으로 분류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언제나 강조하듯 겨우 8가지 알파벳의 조합이 인구의 다양성을 대표할 수는 없으니, 재미로만 보길 바란다.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사심을 담아 내 성..

생각의 조각들 2020.09.14

2개 국어를 구사한다면 공감할 사피어-워프 가설의 개인적인 사례

14년간 2개 국어를 구사하면서 느낀 바는, 사피어-워프 가설이 적어도 내게는 가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일상에서부터 언어와 세계관의 밀접한 관련을 느끼고 있었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기 위해 마주했던 그날의 딜레마는 이를 더 유심히 곱씹을 명분을 주었다. 참고로 이 글은 사피어-워프 가설의 과학적 검증이나 책의 줄거리와는 관계가 없다. 그저 독서 이후 피어난 생각의 교집합일 뿐이다 (오로지 책에 대한 감상문이 궁금하다면 맨 밑으로). 나는 원작을 뛰어넘는 '초월 번역'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의 책은 한국어로 읽는 게 당연하고, 영어권 책은 영어로 읽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이다. 이런 신념 때문에 두 언어를 벗어나는 순간 난 골치가 아파진다. 제3의 언어로 탄생한 책은 둘 중 어느 방향에서..

독후 활동 2020.09.13